플리머스 출생이며 1658년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하고, 1678년 찰스 2세의 궁정목사(宮廷牧師)가 되었다. 케임브리지 ·플라톤파와 친교가 있었으나 자신은 R. 데카르트의 철학을 ‘최고의 철학’이라 하였다.
당시 옥스퍼드를 지배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는 비판적이었다. 경험적인 귀납법(歸納法)을 존중하고 과학적인 회의(懷疑)의 입장에서 인과성(因果性)의 확실성도 의심하여 D.흄의 선구자라 불린다. 주요저서에 《독단적인 의견을 불식(拂拭)하는 일의 허무 The Vanity of Dogmatizing, or Confidence in Opinions》(1661)가 있다.
그는 자칭 회의론자이며, 영혼이 육체에 앞서 존재하고 마법과 유령이 실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를 심리 연구의 선구자로 보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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