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는 개혁을 약속함으로 민중의 환심을 사 전쟁을 속행하고자 한 데 비해 소비에트는 전쟁에 반대하고 무병합, 무배상 강화를 신속히 성립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소비에트 내에는 처음에는 사회혁명당, 멘세비키 세력들이 강하였으나, 4월에 레닌, 5월에 트로츠키 등이 돌아온 뒤에는 볼세비키 세력이 강해졌다. 특히 레닌은 '자본주의 타도없이 종전은 불가능하다' 는 등 10개항에 걸친 4월 테제(April Theses)를 발표하였다. 이것이 곧 볼세비키 방침이 되어 '임정타도', '모든 권력은 소비에트로' 라는 구호를 내걸고 임시정부에 대항했다.
1차대전에서 독일군에게 크게 패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민중은 점차 좌경화되었고 7월에 페트로그라드의 노동자, 농민들이 볼세비키 지도아래 봉기하여 정권 쟁취를 기도하였으나 진압당하였다. 트로츠키를 포함한 많은 볼셰비키가 체포되고 레닌도 핀란드로 망명하였다. 임시정부는 내각의 개조를 단행하여 사회혁명당의 케렌스키(Kerensky)가 수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 때 우익 보수 세력이 힘을 얻어 케렌스키 정부를 타도코자 9월 코르닐로프Kornilov) 장군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케렌스키는 트로츠키 등을 석방하여 볼셰비키의 협력을 얻어 겨우 이를 진압하였다.
다시 볼셰비키의 세력이 강화되자 레닌은 귀국하여 11월 7일을 기하여 일제히 무장 봉기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그 준비에 착수하였다. 이 혁명은 마침내 성공하여 임시정부의 요인은 대부분 체포되고 케렌스키는 해외로 도망하였다. 이 날로 '인민위원회'라는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볼셰비키가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를 11월혁명(러시아력 10월 혁명)이라 일컫는다.
정부는 11월 8일 토지사유권을 폐지하고 지주의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하여 농민에게 분배한다는 '토지에 관한 포고'를 발표했고 1918년 3월 독일 및 그외 동맹국과 단독 강화조약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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