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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2-21
 제목  스올의 문(門)
 주제어  스올 지옥
 자료출처    성경본문  마 16:18
 내용

스올의 문(門) (마태16:18)

 

   신구약 성경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는 히브리식 표현들은 때때로 우리같은 타문화권 독자들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문구중에서도 더러 순수하게 히브리적인 표현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러한 표현들은 당대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아무런 어려움없이 이해되는 것들이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묻는 예수님의 물음에 베드로가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그를 가리켜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태16:18)고 말씀하셨다. 여기 우리말 개역 성경에서 ‘음부의 권세’ (각주에는, ‘음부의 대문’)라고 번역한 문구는 하나의 독특한 히브리식 표현이다.

 

   헬라어로 ‘퓔라이 하두’ (πυλαι ᾅδου)라고 읽는 이 표현은 본래의 히브리어 표현을 문자적 의미를 따라 그대로 옮긴 것이므로, 그 헬라어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는 없다. 이 표현을 다시 히브리어로 옮기면 ‘샤아레 스올’ (לואשׁ ירעשׁ)이 된다. 일단 ‘스올’이라는 낱말은 그대로 남긴 채 이를 우리말로 직역하면 ‘스올의 문들’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스올’과 ‘문(들)’이 구약 성경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별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히브리어 낱말 ‘스올’ (לוֹא󰚉)은 구약 성경에 모두 합하여 65회 출현하는데, 칠십인역에서는 거의 전부 ‘하데스’ (ᾅδης)로 번역되었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죽어서 가는 지하 세계’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이러한 용법에 대하여 특별히 신학적인 해석을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낱말은 단순히 당시 (성경 시대) 히브리인들의 문화 및 언어 관습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스올’에 가장 가까운 우리말 표현은 아마도 ‘저승’이 될 것이다.

 

   히브리어에서 ‘스올’은 때때로 의인화되어 신체 기관의 일부와 연결되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자면 ‘스올의 배(腹)’ (요나2:3), ‘스올의 손’ (호세아13:14; 시편49:15; 89:48), ‘스올의 입’ (시편141:7) 등이다. 이런 표현들과 더불어 ‘스올의 줄’ (삼하22:6; 시편18:5)과 같은 표현은 모두다 ‘스올’을 의인화하여 ‘죽음’이란 뜻으로 사용된 것들이다. ‘스올’이 ‘죽음’에 대한 대체어로 사용된다는 사실은 위에 언급한 구절들에 나오는 댓구적(對句的) 표현들만 보더라도 분명히 알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삼하22:6과 시편18:5에서는 ‘사망의 올무’, 그리고 호세아13:14과 시편89:48에서는 ‘죽음’이, ‘스올’과 어울려 생겨난 표현들과 대구(對句)를 이루고 있다.

 

   한편 구약 성경에 빈도 높게 등장하는 히브리어 낱말 ‘샤아르’ (רעשׁ)는 일반적으로 ‘성문’, 또는 ‘벽이나 성에 나 있는 넓은 입구’를 뜻한다. 때때로 이 단어는 비유적인 방법으로도 사용되는데, 그 경우에는 보통 ‘(성문으로 대표되는) 거주지’ 또는 ‘영역’을 가리킨다. 성문은 성의 출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점으로서 성 전체를 대표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욥기38:17의 ‘사망의 문’과 ‘사망의 그늘진 문’이라는 표현은 모두다 ‘사망이 지배하는 영역’을 가리킨다. 죽을 병에서 치료받은 히스기야는 그 감사기도의 서두에 마태16:18에 나오는 ‘스올의 문’이라는 동일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사야38:10). 이 역시 ‘죽음의 영역’ 또는 ‘죽음’ 자체를 가리킨다. 이 표현은 또 다시 외경중 하나인 지혜서16:13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신은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권한을 가지고 계시며 사람들을 ‘음부의 문’ 안으로 데리고 가실 수도 있고 데려 내 오실 수도 있습니다.”

 

   이상의 고찰을 통하여 우리는 마태16:18에서 예수께서 ‘죽음에 대한 승리’를 선언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망의 영역’ 또는 ‘사망’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 “내 교회”를 이길 수 없다. 이와 동일한 사상은 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사야25:8; 호세아13:14; 고전15:54; 계시록20:14 등). 참고적으로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이다” (고전15:26)라고 한 점을 통하여 볼 때, 아브라함의 후손이 그 ‘대적’ 또는 ‘원수’의 ‘성문’(רעשׁ)을 얻을 (또는 ‘함락시킬’) 것이라는 약속은 (창세기22:17; 24:60) 다분히 메시야 예언적 성격을 띄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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