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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kcmseoul  작성일  2008-04-11
 자료구분  주제어  주제어  블레셋인 천 명을 죽인 삼손
 내용

성경:사사기15:14-20               나귀의 턱뼈로!

  본문은 삼손의 굉장한 싸움 자질을 강력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힘은 어느 정도까지 발휘할 수 있을까요?

Ⅰ. 나귀의 턱뼈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삼손을 붙들어 가지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주려고 나타나자 블레셋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릅니다. 드디어 삼손에게 복수할 기회가 왔다는 승리감에 쾌재를 부른 것입니다. 그러나 의외의 사태가 발생합니다. 단단히 결박되어 나타난 삼손이 돌연 묶인 줄을 끊어버리고 땅바닥에서 무엇인가를 줍더니 기뻐 날뛰고 있는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돌진하여 옵니다.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집니다.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일천명을 죽이고"(15절). 턱뼈 하나로! 일천명을 죽이다! 뜻밖에 삼손이 갑자기 덤벼들자 블레셋 사람들은 흠칫 놀라지만 이내 벌떼처럼 삼손을 에워싸며 죽이려고 듭니다. 삼손에게 있는 무기는 고작 나귀 턱뼈입니다. 그 크기와 길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기껏해야 핸드볼 크기만 하지 않을까요? 고만한 크기의 무기를 가지고 얼마나 버티고 얼마나 자신을 방어하고 얼마나 적을 쓰러트릴 수 있을까요? 게다가 지금 삼손이 맞서 대항하고 있는 블레셋 사람들은 완전 무장을 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칼이나 창이 그들의 손에는 쥐어져 있고 방패도 들고 있을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상대가 안되는 싸움입니다. 그런데 예상 밖의 결과가 벌어집니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붉은 피를 흘리며 나뒹구는 쪽은 블레셋 사람들입니다. 새카맣게 달라붙은 블레셋 군사들이 제대로 칼 한번 휘두르지 못하고 땅바닥에 거꾸러집니다. 삼손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돌아다니는 자리에는 시체들이 즐비합니다. 참으로 엄청난 일입니다. 삼손에게는 블레셋 군사들은 허수아비에 불과합니다. '일당백(一當百)'이란 말이 국어사전에 있어도 '일당천(一當千)'은 없습니다. 그런데 삼손이 이러한 신조어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삼손의 싸움 자질은 상식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Ⅱ. 하나님의 권능
  도대체 삼손의 그 엄청난 괴력과 싸움 실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14절 중반절). 그의 능력은 100% 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에게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삼손을 거구(巨軀)일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큰 몸집에서 나오는 굉장한 힘을 떠올립니다. 성경은 이 부분에 있어서 침묵합니다. 삼손의 키와 몸무게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는 힘이 세고 몸놀림이 민첩한 용사였음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이러한 능력은 어디에서? 바로 주 하나님으로부터입니다. 하나님은 삼손을 일당천을 감당하는 용사로 세워주셨습니다. 삼손의 손에 들린 나귀턱뼈는 하나님의 능력의 상징입니다. 별 것도 아닌 물건이 삼손의 손에서는 막강한 파워를 가진 무서운 무기로 쓰여집니다. 주님의 능력은 놀랍습니다. 사람들은 삼손의 놀라운 싸움 실력을 보면서 기가 질리고 놀라서 도망가기 바빴지 그의 능력의 비밀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월등한 숫자로도 도저히 삼손을 제압할 수 없었던 블레셋 사람들은 기가 질렸을 것입니다. 홀로 좌충우돌하며 작은 나귀의 턱뼈 하나 달랑 들고도 수많은 블레셋인들을 죽이는 삼손의 위세에 눌려 숨조차 쉬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크신 권능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은 몰랐을 것입니다. 삼손의 용맹함과 천하무적 싸움 실력은 주 하나님의 권능인 것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약해도 하나님의 권능은 크십니다. 주님의 손에 붙들리면 우리를 대적할 자 없습니다. 나귀 턱뼈 하나 삼손의 손에 쥐어주고 일천명을 쓰러트리게 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들의 주님이십니다.       


성경:사사기15:14-20                  엔학고레

  우리는 살아오면서 수많은 위기들을 만났고 또한 앞으로도 위기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삼손 역시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과연 그는 이 위기의 터널을 어떻게 통과하였는지를 잘 살펴보고 위기 극복의 비결을 배우도록 합시다.  

Ⅰ. 위기에 처한 삼손
  삼손이 나귀의 턱뼈로 자그마치 블레셋인 일천명을 죽이고 나자 싸움은 일단락 됩니다. 그런데 승리의 기쁨도 잠시였고 이내 삼손은 매우 절박한 위기에 봉착합니다. "삼손이 심히 목마르므로"(18절 상반절). 심한 갈증이 삼손을 괴롭힙니다. 얼마나 갈증의 정도가 심하면 거의 목숨이 끊어질 지경이라고 그는 표현합니다. "이제 목말라 죽어서"(18절 하반절). 짐작컨대 삼손이 아주 지쳐있지 않나 합니다. 한자리에서 혼자서 일천명의 목숨을 끊어놓는 전투를 벌였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십초에 한 명 꼴로 죽여도 약 세 시간이 소요됩니다. 오초에 한 사람 꼴로 더 빨리 사람을 쓰러뜨린다 하여도 시간 반이 걸립니다. 삼손은 혼자 싸우기에 중간중간 쉰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에게 목을 내놓고 죽여 주십사 하며 차례차례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처절한 결사항전입니다. 삼손의 입장에서는 적의 약점을 파악하려고 탐색하는 여유란 없습니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나귀턱뼈를 들고 있는 손을 휘둘러야 합니다. 그것도 살살 휘두를 수 없고 있는 힘을 다하여 휘둘러 적의 숨통을 단 한방에 끊어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삼손이 지쳤다 라고 말하지 않고 목말라 있다 라고 기록합니다. 이 점이 특이합니다. 지친 몸은 좀 쉬면 나아지지만 목마름은 즉시 물을 마시지 않으면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아마 삼손은 블레셋인들과의 싸움을 벌이는 내내 온몸에 땀으로 범벅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몸에 약 칠십 퍼센트가 수분이라고 하는데 체내의 수분이 땀으로 나가기만 하고 공급이 없으면 탈수(脫水) 증상이 일어나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기에 삼손의 고백은 엄살이 아닌 목숨이 매우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절규입니다. 큰 승리 뒤에 위기를 만난 삼손입니다.

Ⅱ. 부르짖는 삼손
  그 순간 삼손은 위를 바라봅니다. 산더미처럼 쌓여진 블레셋인들의 시체들을 보면서 자신이 이루어 놓은 놀라운 전과에 도취하지 않고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께서 종의 손으로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니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의 손에 빠지겠나이다"(18절). 그는 두 가지를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하나는 승리의 공을 하나님께 돌리고, 다른 하나는 그 승리의 영광이 자신으로 인해 가려지지 않기를 간구합니다. 삼손의 위대한 신앙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직 '주 하나님의 영광'만을 생각하는 삼손의 신앙입니다. 목이 말라 죽을 지경에 이르러서도 그는 우선 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합니다. 그는 급한 물을 찾지 않고 오히려 주님의 가려질 영광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슬퍼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이 혹시나 자신으로 인해 가려지지는 않을까를 염려했습니다.

Ⅲ. 엔학고레
  "하나님이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물이 거기서 솟아 나오는지라"(19절 상반절). 삼손에게 필요한 것은 물이었지만 그는 물을 구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구했습니다. 바로 그 때에 우리 주 하나님은 삼손에게 절박하게 요구되는 생수를 넘치도록 공급하여 주셨습니다. 먼저 주님을 앞세우는 자에게 우리 주님은 그의 일상의 필요들을 채워주십니다(마태복음6:33). 목이 말라 죽을 지경에 이른 삼손이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시원한 샘물을 넘치도록 마시고 본래의 강건함을 회복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적을 체험한 장소를 '엔학고레' 라 불러 자신의 신앙의 기념비로 마음에 새깁니다. '엔학고레', 부르짖는 자의 샘이란 뜻입니다.

  삼손의 엔학고레는 먼저 주님의 영광을 구할 때에 얻어진 놀라운 주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장소입니다. 우리에게는 엔학고레가 없습니까? 먼저 주의 나라와 의를 생각하고 달려갔더니 우리 주님은 나의 인생길에 만난 환난이나 위기로부터 승리하게 하여 주셨던 은혜의 장소는 어디입니까? 앞으로도 우리는 신앙의 여정에 수많은 엔학고레를 만들어야 합니다.     


성경:사사기15:20              사사 삼손의 사역

  삼손 홀로 블레셋인 일천명을 죽인 레히 전투는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삼손에게도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Ⅰ. 사사 삼손
  레히에서 큰 승리를 얻은 삼손이 드디어 사사로 이스라엘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혼자서 일천명의 블레셋인을 죽인 삼손이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지도자로 여김을 받습니다. 블레셋의 위협에 놀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삼손을 결박하여 블레셋인들에게 넘겼는데 삼손이 묶인 줄을 끊고 혼자서 일천명의 블레셋인들을 죽이고 큰 승리를 거두자 이제는 삼손을 보고 대하는 태도가 바뀝니다. 자신들의 진정한 지도자로 삼손을 높입니다. 본문 20절에서 비로소 삼손을 사사로 이스라엘을 섬겼다는 기록이 나온 것으로 미루어 보아 레히의 승전을 계기로 삼손이 본격적으로 사사의 직무를 감당하였던 것 같습니다.

Ⅱ. 20년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봉직한 기간입니다. 이십년 동안 삼손이 무엇을 하였는가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본문에 이은 사사기16장에서 삼손이 최후를 마치는데 이로 보건대 그의 사사 봉직 기간 동안 특별히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고는 보이질 않습니다. 사사로서 일상적인 임무에 충실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사사 삼손의 사역은 어떻게 이스라엘을 블레셋인들로부터 구원하였고 그리고 그가 어떠한 최후를 맞이했는가를 보여주는 데에 크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중간에 사사로 활동한 이십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Ⅲ. 구원과 기쁨
  삼손이 사사로 봉사한 기간인 이십년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커다란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구원(해방)과 평안(기쁨)입니다. 블레셋인들의 학대와 압제를 걷어내고 자유를 만끽한 시대입니다. 블레셋인들은 레히 전투에서의 참패를 기점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침략과 약탈을 감행하지를 못합니다. 그저 삼손에 대한 원한으로 이를 갈고 있을 따름이지 사사 삼손이 두 눈뜨고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스라엘 땅에 얼씬도 못합니다. 이스라엘은 사사 삼손을 방패막이로 하여 이십년 동안 태평한 시대를 즐깁니다. 본문 20절은 이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어준 채 살지만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든든한 방패막이 역할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왕이면 다른 사람을 방패 삼아 살기보다는 연약한 자들에게 방패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삼손을 들어 이스라엘의 방패막이로 삼으셨습니다. 삼손은 자신의 능력을 엉뚱한데 쓰지 않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들의 방패막이가 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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