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사사기15:9-13 자기 사명에 충실한 삼손
지도자는 마땅히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유익에만 급급하다간 그릇이 큰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매사에 분명한 선을 그을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저항 한번 하지 않고 쉽게 무릎 꿇는 삼손을 만나게 됨으로 다소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삼손의 처신엔 그의 깊은 영적 탁월함이 담겨져 있음을 우리는 발견해야 합니다.
Ⅰ. 붙잡힌 삼손 장인과 아내의 죽음을 빌미 삼아 삼손은 수많은 블레셋인들을 살해하고 나서 에담 바위로 몸을 피신합니다(사사기15:7-8). 자기 동족이 살해당한 블레셋인들은 가만있으리 만무하고 즉각 대대적인 보복을 시도합니다. 우선 삼손을 잡으려고 유다 땅으로 군사를 보냅니다(9절).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블레셋인들의 침공을 당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강하게 블레셋 사람들에게 항의합니다(10절). 블레셋인들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삼손 때문에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됨을 알고 삼손을 생포하려고 에담 바위로 달려갑니다(11절). 그리고 삼손을 사로잡음으로 문제는 쉽게 일단락 됩니다(12-13절). 우리는 본문에서 뜻밖의 삼손의 태도를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손에 잡혀 블레셋인들에게 넘겨지면 끝장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고도 삼손은 저항 한번 하지도 않고 순순히 포박에 응합니다. 지금까지 보아 온 삼손의 모습하고는 아주 달라진 모습입니다. 그렇게 용감하고 그렇게 싸움 잘하고 그렇게 날랜 삼손이 호랑이 앞에 강아지처럼 꼬리를 내립니다. 게다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신을 때리거나 죽이지 말 것을 부탁합니다. "너희는 친히 나를 치지 않겠다고 내게 약속하라"(12절 하반절). 삼손답지 않은 아주 나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Ⅱ.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삼손 싸울 기력이 다 떨어져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삼천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숫자에 기가 꺾여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그랬던 것인가? 그 어느 것도 아닙니다. 본문에 계속 이어지는 내용에는 삼손이 나귀의 턱뼈를 들고 무려 일천명이나 되는 블레셋인들을 죽이는 장면이 나옵니다(사사기15:14-17). 삼천명도 두렵지 않을 천하 무적 삼손입니다. 그런데 왜 삼손은 자기 자신을 지켜 방어하려고 싸우지 않았는가요? 바로 삼손은 자기가 맞서 싸울 대상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손이 쳐부수어야 할 적은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라 블레셋 사람들입니다. 삼손이 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학대당하고 있는 동족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사사기13:5). 그러기에 삼손은 항상 자기 사명을 잊지 않고 있었으며 어디까지나 자기 사명에 충실한 삶을 살아갔습니다. 삼손을 잡으려고 삼천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이닥친 것은 삼손이 저항하면 일전을 각오한다는 태도입니다. 또한 삼손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손에 붙잡히지 않으려면 피흘리는 싸움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삼손은 동족의 피를 손에 묻히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강한 손은 블레셋 사람들을 쳐부수는데 사용되어져야 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삼손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맞서 싸워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세를 기꺼이 포기하고 순순히 자기 자신을 이스라엘 사람들의 손에 결박되도록 하는 길을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불이익이 되더라도 끝까지 자기 사명에 충실하려는 삼손의 장한 모습이 본문에 담겨 있습니다. 적과 아군을 구분한 삼손입니다. 공과 사를 구분한 삼손입니다. 자신의 유익보다는 하나님의 사명을 앞세운 삼손입니다.
삼손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공과 사를 구분하고 적과 아군을 분명히 구분하는 영적 탁월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과 힘을 쓸 장소와 때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주 하나님과 민족을 위해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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