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룻기1:1-5 설상가상(雪上加霜)
엎친 데 겹친 격으로 환난을 겪어 본 적이 있습니까? 계속 일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꼬여만 간다면 견디기 힘든 고통일 것입니다. 여기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도 다 소용없고 오로지 가중되는 불행에 짓눌린 한 가정을 소개합니다.
Ⅰ. 고향을 등지고 유다 족속의 땅인 베들레헴이라는 동네에 살던 엘리멜렉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말미암아 고향을 떠나게 됩니다. "사사들의 치리 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1절 상반절). 자연재해 앞에 인간은 나약한 존재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된다 하여도 홍수나 지진 혹은 기근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나름대로 머리를 써가며 만반의 대비를 하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농사와 목축이 주업인 이스라엘로서는 흉년이라는 거대한 장벽에 맥못추고 맙니다. 엘리멜렉 역시 흉년 앞에 손을 들고 가솔들을 이끌고 살길을 찾아 서둘러 고향을 떠납니다. 그리고 모압이라는 이방인의 땅으로 옮깁니다. 아내 나오미 그리고 두 아들이 그에게 딸린 식구들입니다. 낯선 얼굴들로 가득찬 이방인의 땅에서 정착하기란 용이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보려고 애를 썼을 것입니다. 현재는 힘들어도 참고 견디면 좋은 일이 생기지 않겠느냐 하는 희망을 품고 열심히 뛰었을 것입니다. 또한 아무렴 흉년이 휩쓸고 있는 유다 땅보다는 낫지 않겠느냐 하며 위로도 받았을 것입니다.
Ⅱ. 가장(家長)의 죽음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으며"(3절). 모압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장인 엘리멜렉이 숨을 거두고 맙니다. 연약한 여인네 나오미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큰 충격과 슬픔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낯선 이국 땅에서 남편의 역할을 매우 컷을 것입니다. 힘들고 외로워도 곁에 든든한 남편이 있으니 크게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돌연 죽음으로 이별을 고합니다. 졸지에 과부가 된 나오미입니다. 의지할 데도 없는 미망인입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마냥 슬퍼하며 좌절하지는 않았습니다. 두 주먹 불끈 쥐고 일어섰습니다. 남편의 뒤를 이어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려고 힘을 썼습니다. 남부럽지 않게 두 아들을 키워 결혼도 시켰습니다. 이제 제법 틀이 잡혀갑니다. 장가 든 두 아들이 나오미에게 있어선 든든한 두 기둥과도 같습니다. 해가 갈수록 이러한 믿음은 더욱 견고해져 갑니다. 지난날의 힘든 삶의 터널을 지나느라 더욱 깊게 주름진 늙은 노파 나오미의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흐릅니다. 그런데 고난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숨 좀 돌릴까 하는 찰나에 또 다른 환난의 먹구름이 나오미를 무섭게 덮어 누릅니다.
Ⅲ. 두 아들의 죽음 "거기 거한지 10년 즈음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4-5절). 한창 젊은 나이인 두 아들이 돌연 죽음을 당합니다. 전혀 상상도 못한 끔찍한 일이 현실로 닥쳤습니다. 병들어 죽었는지 혹 사고로 목숨을 잃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두 아들마저 훌쩍 곁을 떠난 나오미의 심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살 희망마저 상실해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흉년으로 살길 찾아 고향 떠나 타향에 온 지 10년이건만 남은 것은 한숨과 슬픔뿐입니다. 아마 나오미의 속은 새카맣게 타서 숯이 되었을 것입니다.
설상가상인 나오미의 모습은 너무도 딱합니다. 실제 당사자인 나오미는 당시 무엇을 생각하였을까요? 왜 나에게는 이다지도 모진 풍파만 닥치는가? 이거 너무 심한 경우가 아닌가? 차가운 모래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는 황야에 뎅그러니 놓여진 나오미의 심정,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이처럼 어떤 이는 연거푸 환난을 만나기도 합니다. 삶이 언제나 장미빛으로 물들어가지만 않습니다. 빠져 나오기 힘든 구덩이가 있고 벅찬 고개가 있습니다. 때론 연거푸 이어질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문제는 고난이나 환난에 임하는 우리들의 자세입니다. 아무튼 룻기는 암담한 현실을 배경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성경:룻기1:1-5 10년의 세월과 나오미
고향을 떠나서 이국 땅 모압에 거주한 10년의 세월은 나오미에게 있어서 어떤 시기였을까요?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라는 말이 있듯이 나오미가 겪은 십년의 세월은 여러모로 많은 변화가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Ⅰ. 상실의 세월 나오미에게 있어선 얻은 것보다는 잃어버린 것들이 많았던 세월이었습니다. 검은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같이 살자 했던 남편이 그녀의 곁을 떠납니다(3절). 남편 엘리멜렉은 그녀에게는 주 하나님 다음으로 의지가 되었던 사람입니다. 언어와 풍습이 다른 이국 땅에서의 남편의 역할은 매우 컸을 것입니다. 기근 때에 고향을 떠나 모압으로 가자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던 사람이 바로 남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을 모압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잃어버렸습니다. 게다가 두 아들마저 그녀는 잃고 맙니다(4-5절). 나오미가 낳아서 애지중지 키워 장가보낸 믿음직한 아들들입니다. 남편이 떠난 상실감의 슬픔을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것도 곁에 두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들 모두 잃고 맙니다. 이 모든 것이 불과 10년 세월 동안에 일어났습니다.
Ⅱ. 고통의 세월 어느 조사에 의하면 배우자의 죽음이 정서적으로 가장 큰 위기를 가져다준다고 합니다. 남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나오미는 심적으로 또한 육체적으로 상처를 가장 크게 입습니다. 그것도 낯선 이국 땅에서의 부부간의 이별이니 나오미로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서로 의지가 되었던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에서 오는 상실감과 고통은 참으로 컸습니다. 게다가 남편의 죽음에서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채 가시기도 전에 두 아들마저 죽고 맙니다. 나오미의 고통에 가속도가 붙습니다. 고통에 또 다른 고통이 겹치니 나오미의 어깨가 짓눌려 숨쉬기조차 힘든 고통에 거의 까무러칠 지경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자식은 죽어 부모의 가슴에 묻힌다고 하니 사랑스런 아들들의 죽음은 나오미를 오래도록 괴롭혔을 것입니다. 이 고통이 얼마나 심하였으면 나오미는 자신의 이름에 대하여 강한 반감을 가졌겠습니까?(룻기1:20-21) 희락이란 뜻이 담긴 나오미의 이름에 전혀 걸맞지 않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하여 깊은 회의가 들었기 때문입니다.
Ⅲ. 얻은 것 남편 잃고 자식 잃고 게다가 있는 재산마저 다 날려버렸는데 무엇 하나 제대로 건진 것이 있었을까요? 성경은 그래도 얻은 것이 있다고 우리에게 환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상실과 고통의 10년 세월이지만 나오미가 건진 것이 있습니다. 어두운 터널 속 같은 참담하고 눈물로 얼룩진 인생 길이었지만 그녀는 분명히 얻은 것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아픈 만큼 성숙을 경험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먼저 확 눈에 띄게 드러난 사실은 나오미는 두 며느리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두 아들을 장가들여 놓고 얻은 두 이방 여인인 오르바와 룻입니다(4절). 오르바와 룻은 아주 착한 며느리들입니다. 나오미는 이 두 며느리를 통하여 크게 은혜를 입었고 위로를 받았다고 간증합니다(룻기1:8). 그리고 또 한가지 나오미가 얻은 것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는 성경에 구체적으로 기록은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문맥의 정황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오미의 신앙입니다. 상실과 고통의 10년 세월동안에 그녀가 기죽지 않고 혹은 주저앉지 않고 일어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녀의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나오미의 신앙의 탁월함이 돋보이는 대목은 며느리 룻의 고백에서 선명하게 나타납니다(룻기1:16-17).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환난을 당하면 당장 눈에 보이는 상실이 커 보입니다. 하지만 비록 눈에 잘 띄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얻은 것도 있습니다. 연거푸 큰 환난을 만난 나오미를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은 커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내면에 승화 된 믿음은 더욱 소홀히 여겼을 테지요. 하지만 우리 주님은 나오미가 얻는 두 며느리 중에 한 사람인 룻을 통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이를 이루는 과정에 나오미의 신앙을 크게 활용하셨다는 점입니다.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로마서8:28). 할렐루야! |